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DAI)의 작동 원리와 담보 메커니즘

암호화폐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자 진입장벽 중 하나는 바로 '극심한 변동성'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등락을 반복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는 안정적인 가치 저장이나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가치가 미국 달러와 같은 법정화폐에 1:1로 고정(페깅)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USDT(테더)나 USDC(서클)는 발행사가 은행에 실제 달러를 예치하고 그만큼의 코인을 발행하는 '중앙화' 방식입니다. 편리하지만 발행사를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죠. 만약 그들이 지급 준비금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바로 이 질문에서 탈중앙화 금융(DeFi)의 정신이 담긴 위대한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다이(DAI)', 즉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중앙 기관 없이, 오직 스마트 컨트랙트와 담보만으로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는 DAI의 경이로운 작동 원리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DAI란 무엇인가? - 메이커다오(MakerDAO)의 창조물

DAI는 탈중앙화 자율 조직(DAO)인 메이커다오(MakerDAO)가 관리하는, 이더리움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입니다. DAI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어떤 기업이나 은행도 DAI를 통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DAI의 발행과 소각, 가치 유지는 전적으로 '메이커 프로토콜'이라는 스마트 컨트랙트 시스템과 암호화폐 담보에 의해 투명하게 운영됩니다.

즉, USDT가 '은행에 달러가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면, DAI는 '스마트 컨트랙트에 충분한 가치의 암호화폐가 담보로 잡혀 있다'는 코드 기반의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것이 바로 DAI가 검열 저항적이고 진정한 의미의 'DeFi 네이티브' 스테이블코인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2. DAI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볼트(Vault)와 초과 담보

DAI는 누구나 자신의 암호화폐 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직접 발행(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은 '메이커 볼트(Maker Vault)'라는 개인 금고 역할을 하는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DAI 발행 과정 (Step-by-Step)

  1. 볼트 생성 및 담보 예치: 사용자는 메이커 프로토콜에서 볼트를 열고, 담보로 인정되는 암호화폐(예: 이더리움(ETH), 랩트비트코인(WBTC) 등)를 예치합니다.
  2. DAI 생성(대출): 예치한 담보 가치에 기반하여 원하는 만큼의 DAI를 생성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자산을 담보로 DAI를 대출받는 행위입니다.
  3. 핵심 원칙 '초과 담보': 여기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초과 담보(Over-collateralization)'입니다. 100달러 가치의 DAI를 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이상의 가치(예: 최소 150달러)를 지닌 암호화폐를 담보로 맡겨야 합니다. 이 '안전 완충제'는 담보 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DAI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핵심적인 안전장치입니다.
  4. DAI 상환 및 담보 회수: 사용자는 빌렸던 DAI와 소정의 이자인 '안정성 수수료(Stability Fee)'를 지불하면, 담보로 맡겼던 자신의 암호화폐를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습니다. 상환된 DAI는 소각되어 유통량에서 사라집니다.

3. 1달러 페깅을 유지하는 마법: 경제적 인센티브의 힘

중앙 기관의 개입 없이 어떻게 DAI는 마법처럼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할까요? 그 비밀은 바로 시장 참여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유도하는 메이커다오의 정교한 정책 수단에 있습니다.

상황 1: DAI 가격이 1달러보다 높을 때 (예: $1.02)

DAI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시장은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 차익 거래 기회: 볼트 소유자들은 담보를 맡기고 1달러에 DAI를 발행한 뒤, 시장에서 1.02달러에 팔아 즉각적인 차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 메이커다오의 정책: DAI 공급을 늘리기 위해 '안정성 수수료(대출 이자)'를 인하합니다. DAI를 빌리는 비용이 저렴해지므로 더 많은 사용자들이 DAI를 발행하도록 유도합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시장에 DAI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가격은 자연스럽게 1달러로 하락하게 됩니다.

상황 2: DAI 가격이 1달러보다 낮을 때 (예: $0.98)

DAI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의미입니다.

  • 차익 거래 기회: 볼트 소유자들은 시장에서 0.98달러에 값싼 DAI를 구매하여, 1달러 가치로 계산되는 자신의 대출을 상환함으로써 이익을 얻습니다.
  • 메이커다오의 정책: DAI 공급을 줄이기 위해 '안정성 수수료(대출 이자)'를 인상합니다. DAI 대출 유지 비용이 비싸지므로 기존 차용자들이 빚을 갚도록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DAI가 매수되고 소각되어 공급량이 줄어듭니다.

이러한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DAI의 가격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1달러로 수렴하게 됩니다.

구분 중앙화 스테이블코인 (USDT, USDC)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 (DAI)
담보 자산 은행에 예치된 실제 달러, 국채 등 스마트 컨트랙트에 예치된 암호화폐 (ETH, WBTC 등)
발행 주체 중앙화된 기업 (Tether, Circle) 누구나 담보를 맡기고 발행 가능
신뢰 기반 발행사에 대한 신뢰, 외부 회계 감사 코드에 대한 신뢰, 온체인 데이터 투명성
주요 리스크 발행사 파산, 계정 동결 등 규제 및 신용 리스크 담보 자산 가격 급락, 스마트 컨트랙트 해킹 리스크

4. 최후의 안전장치: 청산 (Liquidation)

만약 담보로 맡긴 이더리움의 가격이 폭락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 DAI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청산' 절차가 작동합니다. 담보물의 가치가 프로토콜이 정한 최소 담보 비율(예: 150%) 아래로 떨어지면, 해당 볼트는 청산됩니다. 프로토콜은 담보 자산을 자동으로 경매에 넘겨 매각하고, 그 돈으로 DAI 대출금을 갚아 시스템의 부실을 막습니다. 이는 DAI가 항상 충분한 담보 가치에 의해 뒷받침되도록 보장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DAI와 메이커다오는 디파이가 어떻게 중앙의 신뢰 기관 없이도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증거입니다. 물론 담보 자산을 암호화폐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장 전체가 붕괴하는 블랙스완 이벤트에는 취약할 수 있다는 내재적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투명한 코드와 경제적 인센티브만으로 달러 페깅을 유지하는 DAI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디파이라는 새로운 금융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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