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E를 넘어선 블록체인 게임의 진화, 게임파이(GameFi)

2021년, '엑시 인피니티(Axie Infinity)'라는 게임이 전 세계를 강타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게임을 하며 버는 돈이 최저 임금을 넘어서면서, "게임을 하며 돈을 번다"는 P2E(Play-to-Earn) 모델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게이머가 게임에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게임 아이템(NFT)과 게임 재화(토큰)라는 '진짜 자산'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혁신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익(Earn)'에만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졌던 초기 P2E 모델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이제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는 P2E를 넘어,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정교한 '금융 시스템'을 결합한 게임파이(GameFi)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초기 P2E 모델이 가졌던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진정한 게임파이는 어떻게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지 그 진화의 과정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초기 P2E 모델의 한계: '노동'이 되어버린 게임

엑시 인피니티로 대표되는 1세대 P2E 게임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게임 자산의 소유권'을 플레이어에게 돌려주는 위대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성공과 동시에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 지속 불가능한 토크노믹스: 대부분의 P2E 게임은 신규 유저가 유입되어 돈을 써야만 기존 유저들이 수익을 얻고, 이 수익을 보고 또 다른 신규 유저가 유입되는 구조에 의존했습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폰지(Ponzi)' 구조와 유사하며, 신규 유저 유입이 멈추는 순간 게임 내 경제가 급격히 붕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재미의 부재와 '숙제'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목적이 게임 플레이의 유일한 동기가 되면서, 게임은 더 이상 즐거운 여가 활동이 아닌 지루한 '노동'이나 '숙제'로 전락했습니다. 이는 게임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진정한 게이머들이 블록체인 게임에 등을 돌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 높은 진입 장벽: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 고가의 NFT 캐릭터를 먼저 구매해야 하는 구조는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벽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국 P2E는 'Play-to-Earn'이 아니라 'Pay-to-Earn' 이라는 비판에 직면했고, 이는 블록체인 게임이 한 단계 더 발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했습니다.

2. 게임파이(GameFi)의 등장: Game + DeFi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게임파이(GameFi)입니다. 게임파이는 단순히 게임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을 넘어, 게임(Game)이라는 재미있는 활동 안에 디파이(DeFi)의 다양한 금융 메커니즘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을 의미합니다.

게임파이의 핵심은 '재미(Fun)'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Play-and-Earn' 또는 'Play-and-Own' 모델로의 전환입니다. 플레이어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이 재미있어서 플레이하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게임 자산(NFT, 토큰)을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게임파이는 디파이의 요소들을 활용하여 훨씬 더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게임 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 NFT 스테이킹 & 렌딩: 플레이어는 자신이 보유한 캐릭터나 장비 NFT를 스테이킹하여 게임 내 거버넌스 토큰을 보상으로 받거나, 다른 플레이어에게 빌려주고(스콜라십) 대여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 게임 내 DEX: 게임 안에서 탈중앙화 거래소(DEX)를 통해 아이템(NFT)이나 게임 재화를 자유롭게 다른 플레이어와 교환할 수 있습니다.
  • 거버넌스 참여: 게임의 주요 업데이트 방향이나 밸런스 조정 등 운영 정책에 대해 거버넌스 토큰 홀더들이 투표를 통해 직접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플레이어를 단순한 소비자에서 게임의 '주인'으로 격상시킵니다.
구분 P2E (Play-to-Earn) 게임파이 (GameFi / Play-and-Earn)
핵심 가치 수익 창출 (Earn) 게임의 재미 (Fun) + 자산 소유 (Own)
플레이어 동기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함 게임이 재미있어서 하고, 그 결과로 자산을 얻음
경제 모델 신규 유저 유입에 의존하는 인플레이션 구조 디파이 요소를 결합한 지속 가능한 경제 설계 추구
주요 대상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 (크립토 유저) 재미를 추구하는 게이머 (일반 대중)

3. 진화하는 게임파이의 미래: AAA급 게임과의 만남

게임파이가 진정으로 대중화되기 위한 마지막 퍼즐은 바로 '게임의 퀄리티'입니다. 지금까지의 블록체인 게임들은 조악한 그래픽과 단순한 게임성으로 인해 기존 웹 2.0 게이머들에게 외면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유비소프트, 스퀘어에닉스, 넥슨 등 대형 게임 개발사(AAA급 스튜디오)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수백억 원의 투자를 유치한 대작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들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기존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그래픽과 깊이 있는 게임 플레이에,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자산 소유'라는 가치를 더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게임파이는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 Free-to-Play & Own: 초기 진입 장벽을 없애기 위해 누구나 무료로 게임을 시작하고(Free-to-Play),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얻는 희귀한 아이템이나 스킨만을 NFT화하여 소유하고 거래하게 하는 모델이 보편화될 것입니다.
  •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A라는 게임에서 얻은 전설의 검 NFT를, B라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아바타의 액세서리로 착용하는 등, 서로 다른 게임과 플랫폼 간에 NFT가 호환되는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자산'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P2E의 등장은 게이머가 게임 경제의 수동적인 소비자에서 능동적인 참여자로 변화하는 혁명의 서막이었습니다. 비록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파이는 이제 '재미'와 '지속 가능한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AAA급 게임의 퀄리티와 웹 3.0의 소유권 경제가 성공적으로 결합될 때, 게임파이는 단순한 틈새시장을 넘어 전체 게임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거대한 흐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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