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 2.0의 등장: 기존 디파이의 한계와 새로운 해결책
우리는 지금까지 디파이(DeFi) 1.0의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탈중앙화 거래소(DEX), 랜딩 프로토콜, 그리고 높은 수익률을 내세운 이자 농사(Yield Farming)까지. 이 모든 혁신은 '유동성'이라는 연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디파이 프로젝트들은 사용자들로부터 유동성을 빌리기 위해 막대한 양의 자체 토큰을 보상으로 지급하며 생태계를 키워왔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동성의 '지속가능성' 문제였습니다.
이자만 쫓아 움직이는 단기 유동성, 무한정 방출되는 토큰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이러한 디파이 1.0의 성장통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새로운 물결이 바로 '디파이 2.0(DeFi 2.0)'입니다. 디파이 2.0은 단순히 기존 모델을 개선하는 것을 넘어, 유동성을 확보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디파이 1.0이 직면했던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디파이 2.0은 어떤 혁신적인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디파이 1.0의 딜레마: '용병 자본'과 유동성 전쟁
디파이 1.0의 가장 큰 문제는 '용병 자본(Mercenary Capital)'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었습니다. 여기서 용병 자본이란, 더 높은 이자율(APY)을 제공하는 곳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단기 투자 자금을 의미합니다.
디파이 프로젝트들은 초기에 사용자를 유치하고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은 토큰 보상률을 내걸었습니다. 이자 농부들은 이 보상을 받기 위해 몰려들었고, 프로젝트는 일시적으로 풍부한 유동성을 확보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보상이 줄어들거나 더 매력적인 프로젝트가 나타나면 이 '용병'들은 순식간에 자금을 빼서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립니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의 유동성은 급격히 마르고, 토큰 가격은 폭락하며,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결국 프로젝트들은 유동성을 '빌리기' 위해 끊임없이 토큰을 찍어내야 하는 '유동성 채굴(Liquidity Mining)'의 덫에 빠졌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토큰 가치의 하락을 유발하여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2. 디파이 2.0의 해법: "유동성을 빌리지 말고, 소유하라!"
디파이 2.0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프로토콜이 직접 유동성을 소유하자 (Protocol Owned Liquidity, POL)".
더 이상 변덕스러운 사용자들에게 단기적으로 유동성을 빌리고 대가를 지불하는 대신, 프로토콜이 직접 LP 토큰을 매입하여 영구적인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프로젝트에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무분별한 토큰 발행을 줄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획기적인 전환이었습니다. 이 POL 개념을 시장에 알린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올림푸스다오(OlympusDAO)입니다.
핵심 메커니즘: 본딩 (Bonding)
프로토콜이 어떻게 LP 토큰을 사들일 수 있을까요? 바로 '본딩(Bonding)' 또는 '채권'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입니다.
- 사용자는 유니스왑 같은 DEX에서 유동성을 공급하고 받은 LP 토큰(예: ETH/DAI LP 토큰)을 가지고 있습니다.
- 디파이 2.0 프로토콜(예: 올림푸스다오)은 이 사용자에게 제안합니다. "당신의 LP 토큰을 우리에게 파세요. 그 대가로 우리 프로토콜의 네이티브 토큰(예: OHM)을 시중 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에 드리겠습니다."
- 사용자는 할인된 가격에 토큰을 얻을 수 있어 이득이고, 프로토콜은 LP 토큰을 직접 소유하게 되어 영구적인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이득입니다.
이렇게 프로토콜의 금고(Treasury)에 쌓인 LP 토큰들은 더 이상 시장을 떠나지 않는 '붙박이 유동성'이 됩니다. 이 유동성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는 고스란히 프로토콜의 수입이 되어 생태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3. 디파이 2.0의 또 다른 혁신들
디파이 2.0은 POL 외에도 자본 효율성을 높이고 사용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 자체 상환 대출 (Self-Repaying Loans): 알케믹스(Alchemix)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용자가 ETH 같은 자산을 담보로 맡기면, 프로토콜은 이 담보를 예치(Yearn Finance 등)하여 거기서 발생하는 이자로 사용자의 대출금을 천천히 자동으로 갚아나가는 모델입니다. 담보를 잃을 위험 없이 미래의 수익을 앞당겨 쓰는 혁신적인 대출 방식입니다.
- 담보 가치 극대화: 기존 랜딩 프로토콜에서는 담보로 맡긴 자산이 단순히 묶여있었지만, 디파이 2.0에서는 이 담보 자산을 활용해 추가적인 수익(이자, 토큰 보상 등)을 창출하고 이를 사용자에게 돌려주어 자본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구분 | 디파이 1.0 (유동성 채굴) | 디파이 2.0 (POL) |
|---|---|---|
| 유동성 확보 방식 | 사용자로부터 단기적으로 '임대(Renting)' | 본딩을 통해 영구적으로 '소유(Owning)' |
| 주요 참여자 | 이자 농부 (Yield Farmer) | 본더 (Bonder), 스테이커 (Staker) |
| 장점 | 초기 사용자 및 유동성 빠른 확보 | 안정적이고 깊은 유동성, 토큰 가치 안정 |
| 단점 | '용병 자본' 이탈 리스크, 높은 토큰 인플레이션 | 복잡한 경제 모델, 초기 진입 장벽 |
디파이 2.0은 디파이 1.0이 겪었던 성장통에 대한 깊은 고민에서 출발한 의미 있는 진화입니다. 물론, 디파이 2.0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올림푸스다오를 필두로 한 많은 프로젝트들이 초기에 내세웠던 비현실적인 APY와 복잡한 토크노믹스는 '폰지 사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약세장에서 큰 가격 하락을 겪으며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로토콜이 유동성을 직접 소유한다'는 핵심 아이디어는 디파이 생태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디파이의 혁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투자자로서 우리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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